공간
산으로 간 박물관
예전에 자취하던 동네 근처에 '산으로간고등어'라는 이름의 식당이 있었다. 고등어가 산으로 간다니, 이름이 워낙 강렬하여 잊지 못했다. 이번에 방문한 공간도 독특한 발상으로 이름 붙여진 박물관이다. 산에 있어서 '뮤지엄 산'이다. 산으로 간 박물관이라니, 대체 왜 산으로 갔을까? 산에 대한 박물관인가?


제지로 유명한 한솔그룹은 강원도 원주에서 이미 종이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함께 미술관을 추가로 짓게 된다. 박물관과 미술관 둘을 하나로 합쳐 새로 개관하게 된 게 바로 뮤지엄 산이다. 한솔그룹 오너의 개인 컬렉션으로 출발했지만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유산으로 전환해 사회 공헌 확대를 목표로 건립을 추진했다고 한다. 한솔제지는 종이를 산업적 가치에서 문화적 가치로 초점을 바꾸어 연구하고 있고,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온전히 경험하려면 도시의 삶과는 거리가 먼 현재 부지가 가장 적합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매표소 건물인 '웰컴 센터'부터 특별한 구조여서 처음부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왜냐하면, 입장 후 갑자기 기념품 코너가 있고 곧바로 건물을 나가도록 되어 있다. 출구로 잘못 들어왔나 싶겠지만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 건물 바깥으로 향하는 문이 새로운 진입로가 되는 셈이다. 마치 다른 세상에 발을 들이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길다란 형태의 부지를 따라 한 방향의 산책로를 걷는 이런 선형적인 구성은 마치 테마파크 어트랙션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첫 전시 공간부터 야외에서 시작한다. '플라워 가든'은 사방에서 둘러싼 산들과 대담하고 인위적인 조형물들이 아이러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파란 하늘이 마치 영화 '트루먼쇼'의 세트장 같아 어디를 둘러봐도 그림이 된다. 웰컴 센터에서 도심과 격리된다면, 플라워 가든에서 현실 세상과 격리된다. 정원을 거닐며 산책을 하다 보면 예술에 더 쉽게 몰두하도록 뇌가 말랑말랑해진다.


'워터 가든'에는 본관까지 이어지는 진입로 주변으로 아주 넓게 물을 채워놨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고요한 수면을 바라보며 물의 정원을 즐긴다. 진입로에 들어선 나와 거대한 조형물, 그리고 파란 하늘이 반사되어 데칼코마니를 만든다. 패션쇼로 활용될 것처럼 생긴 본관 진입로는 실제로 런웨이로 쓰였다고 한다. 함께 간 일행이 있다면 조금 널찍이 떨어져서 서로를 바라보며 걷는 걸 추천한다. 모든 풍경이 그림이 된다.




뮤지엄 산 본관 건물은 형태에서 얻는 시각적 즐거움이 있다. 커다랗게 보든, 자그마하게 보든 건축물의 세세한 의도가 쉽게 보이도록 설계됐다. 어떤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도 벽면과 경사로가 보여주는 선들이 서로 연결되고, 머물거나 이동하는 공간도 단절된 곳이 없었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창문은 전시물에 영향을 주지도, 사람을 방해하지도 않도록 배치됐다. 건축가의 무섭도록 치밀한 계획에 변태 같다는 말이 육성으로 터져 나온다.

본관 건물을 지나면 다시 야외로 나가게 된다. 모든 것이 오직 돌로 만들어진 '스톤 가든'에서 길을 따라 산책할 수 있다. 잔잔한 음악이 나오는 스피커마저 돌 형태로 숨겨져 있어 아주 독특하고 안정된 고요함을 경험한다. 검색해 보니 신라고분을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한다. 해외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제작된 세트장 혹은 돌로 만든 텔레토비 동산과 같다.
마지막에는 공간 예술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들을 체험하는 전시관이 있다. 당일 현장 발권이 따로 필요하며 큐레이터와 동행하게 되는 전시다. 기상 상황에 따라 작품이 달라지는 게 특징이며, 촬영은 엄격히 금지된다. 해당 전시 관람은 시간관계상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다시 반대로 발걸음을 옮겨 그동안 지나왔던 공간들을 거쳐 웰컴 센터로 돌아왔다.

뮤지엄 산이 있는 강원도 원주는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다. 대중교통이 잘 갖춰진 곳에 있지 않으니 접근이 불편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방문해서 전체적인 공간을 돌아다니다 보면, 왜 이토록 멀고 높은 산에 자리를 잡았는지 깨닫게 된다. 도심과 멀어진 곳에서 각종 노이즈를 줄이고 예술을 향한 몰입을 높이기 좋다. 강원도 산 위에 위치한 덕분에 언덕길을 오르며 계절 정취를 제대로 느낀다.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굳이 가보는 게 여행이라 하지 않던가. 봄에는 꽃이 아주 예쁘고 가을은 또 낙엽이 멋들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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