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9

개인사

음식

거기 양배추 스테이크 맛집이지

2026.10.29 · 개인사

부산에 방문하며 맛있기로 유명한 식당을 찾아보게 됐다. 늘 바다 근처로 간다면 왠지 해산물부터 찾아야만 할 것 같은 묘한 의무감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평소에 해산물을 즐겨 먹지 않으니 맛집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이번 부산 여행을 함께한 이가 강력 추천하는 가게가 있다고 했다. 해산물도 돼지국밥도 밀면도 아니었다. 채소 요리로 유명한 와인바였다.

와인바 수와프 간판

실은 와인에 대해 잘 모르고 술을 자주 즐기지도 않는다. 우연하게도 최근에 집 근처 단골 가게에서 진행하는 내추럴 와인 테이스팅 행사에 참여하고 있어 관심 갖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제 조금 요리와 와인을 함께 즐기며 내 취향을 가려내는 단계다. 와인은 늘 비교적 헤비한 고기와 함께 즐겼다. 그런데 채소와 와인 조합이라니, 고기 만큼 익숙한 광경은 아닐 것이다.

마셨던 와인 사진
오늘 마실 와인은 이것

와인바 '수와프'는 해운대 근처에 위치했다. 조그마한 가게의 미닫이 문이 반겨주는데 꽤 정감가는 모습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늑한 분위기가 마치 '심야식당'같이 프라이빗한 느낌이 든다. 자리에 앉아 먼저 와인부터 골랐다. 아, 내가 고른 건 아니고 사실 함께 간 사람이 와인을 좀 알아서 셰프와 함께 심도 깊게 토론을 하더라. 이럴 때는 나도 와인에 대해 탐구하고 싶어진다. 한마디 거들 수 있게 말이다.

버터와 버섯이 들어간 사워도우빵
이런 빵을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찍어 먹을 수 있는 무화과 잼
셰프가 직접 만든 무화과 잼

음식은 오마카세처럼 셰프가 매일 정성을 담아 준비한 요리들이 대접된다. 음식이 등장하면 셰프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날 첫 요리는 식전 빵으로 버터와 버섯이 들어간 사워도우빵이 나왔다. 함께 간 사람과 나눠 먹도록 반으로 갈라져 있었는데 속에 채워진 재료들이 만두처럼 찐득하게 흘러나왔다. 버섯 향이 눅진하게 풍겨 좋았다. 나이프가 있으니 작게 잘라서 먹어도 되지만, 두 손으로 잡고 버거를 먹듯이 베어 물어도 됐다. 아, 사진을 보면서 떠올리는데 침이 고인다.

접시에 담긴 양배추 스테이크
이건 집에서 직접 해보고 싶어졌다

다음은 양배추 스테이크. 셰프는 시오콘부, 버터와 함께 양배추를 한 시간 넘게 약불에서 구웠다고 했다. 소스는 알리오 올리오 시판 소스를 썼다고. 위에는 콩테 치즈 12개월 숙성된 게 뿌려졌다. 수와프에서 처음 먹어본 양배추 스테이크는 정말이지 미친 음식이었다. 채소로 이렇게 대접을 받으면 고기를 생각하지 않게 된다. 와인을 즐기기 위해 일정 부분 고기와 비슷한 고소한 지방 맛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치즈와 버터의 풍미가 양배추에 추가된 느낌이다. 그 조화가 뭐 하나 튀는 맛 없이 완벽했다. 오랜 시간 소스를 끼얹으며 예약한 손님을 위해 굽는 셰프의 모습이 그려졌다.

마늘종 파스타
식감이 아삭한 마늘종 파스타

이어서 마늘종 파스타가 나왔다. 처음에는 녹색 파스타에 마늘종을 얹은 걸로 보였는데, 그게 아니고 면 없이 마늘종을 얇고 길게 썰어 녹색 파스타처럼 볶은 거였다. 빨간 가루가 뿌려져서 고춧가루인 줄 알았던 게 사실 구운 하몽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 후리가케처럼 뿌린 거였다. 셰프가 파스타처럼 와앙 하고 먹지 말고 한 가닥씩 입에 넣어보라고 했다. 마늘종을 씹으니 식감이 아삭해서 좋은데 뒤이어 고소한 파스타 풍미가 따라왔다. 하몽 가루가 짭짤하게 간을 보충해줬다. 이런 먹는 재미가 있는 음식에 저녁이 더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가지볶음
엄마 나도 이런 가지볶음 해줘

다음은 가지볶음이 나왔다. 먼저 즐긴 양배추 스테이크와 함께 가지볶음까지 먹으니 와인을 즐기는데 소고기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 사실 이쯤 되니까 음식의 맛도 맛인데, 이건 어떻게 만들었는지 점점 더 궁금해져서 조금씩 맛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셰프에게 하나씩 물어봤다. 유린기 소스와 비슷한 맛은 알고 보니 시판 블랙빈 소스라고 했다. 셰프는 이전 가게에서 했던 방식과는 다르게 현재 가게에서는 시판 소스를 많이 활용한다고 말했다.

셰프는 이전에 서울 합정역 근처에서 와인바 '페페로니'를 운영했었다. 그동안 맛집들을 찾아 방문하는 데에 관심이 없던 나는 몰랐지만 유명했다고 한다. 부산 방문 후 며칠 뒤 만난 지인들도 그 셰프 부산으로 갔냐면서 양배추 스테이크는 꼭 먹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극찬을 했다. 페페로니에서는 여러 재료들을 손수 직접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번 수와프에서는 페페로니 때와는 다르게 비교적 가볍게 요리를 하며 시판 소스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고 했다.

리조 파스타
풍미 좋은 리조 파스타

마지막 음식은 표고버섯과 샬롯을 갈아 맛을 낸 리조 파스타였다. 쌀 모양으로 만든 파스타는 과거에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최현석 셰프가 직접 손으로 빚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화들짝 놀란 나는 이것도 직접 손님 맞기 전에 손수 빚은 거냐고 물었는데 그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시간 내에 준비하지 못한다고. 뿌려진 치즈와 함께 스푼으로 떠먹는데 알덴테 식감이 즐거웠다.

수와프 실내 사진
해운대 와인바 수와프 실내

와인을 즐기고 부산에 갈 일이 있다면 수와프 방문을 권한다. 실력 좋은 요리사에게 내 저녁 메뉴 무엇을 맡겨도 좋을 듯한 즐거움이 기다린다. '심야식당'에서 대접받으며 밤 해운대의 정취와 함께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다. 단골손님이 들어와 오늘은 어떤 걸 드시겠냐고 묻던 셰프의 그 여유로운 말솜씨가 귀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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