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0

개인사

컬쳐

인간을 이해하려는 엘프의 여정

2026.10.20 · 개인사

애니 좋아하냐는 물음에 '아니요'라고 대답하는 게 좋겠다. 좋아하는 만화에 대해서는 마니아처럼 신나게 떠들 수 있지만, 인생에서 애니메이션 영상을 본 기억은 손에 꼽는다.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작품들도 이름만 들어본 수준이다. 이런 말을 꺼내면 이제 주위에서 한 명쯤은 그걸 아직도 안 봤냐며 타박하곤 한다.

여하튼 그런 내가 최근 몰입해서 본 작품은 '장송의 프리렌'이다. 일본 판타지 애니답지 않게 잔잔한 감동이 특징이라는 한 유튜버 리뷰를 보고 흥미가 동했다. 2010년대 유행하던 자극적인 소재의 이세계물과는 거리가 먼 작품, 잔잔한 일본 판타지는 어떤 느낌일까? 장송의 프리렌 애니메이션 1기를 보고 느낀 감상을 얘기해보겠다.

장송의 프리렌 키 비주얼-새 파티
©山田鐘人・アベツカサ/小学館/「葬送のフリーレン」製作委員会

다른 대중적인 판타지 작품 속 엘프와 마찬가지로 주인공 프리렌도 다른 인간들에 비해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산다. 엘프 시선으로 인간의 한정된 삶과 그들의 마음을 바라보는 게 이 작품의 주요 재미요소였다. 이야기는 과거 프리렌이 속했던 용사 파티가 모든 모험을 마친 후 에필로그로 형태로 시작한다. 작품의 분위기가 잔잔하고 평화로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모험을 시작하며 과거 회상이 교차 편집되는데 그 연출이 자연스러웠다.

이 작품은 인간과는 거리가 먼 존재들을 등장시켜 인간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주인공의 개인적이고 그리운 감정들을 담담하게 푸는 방식은 판타지 특유의 화려한 세계관에 비해 아주 소박하게 느껴진다. 이야기 전개 빠르기도 급하지 않다. 이따금씩 아름답게 그린 자연물들에 시선을 돌리도록 연출해뒀는데 감정을 더 깊게 몰입할 수 있어 좋았다. 홀로 자연이 가득한 곳으로 떠나 그곳에서 사색하던 경험과 비슷했다.

목표로 했던 것들을 모두 달성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던 프리렌은 여전히 젊은 모습인 것과 달리, 인간 용사인 '힘멜'은 이미 머리가 다 벗겨진 노인이 된다. 엘프에게는 아주 짧은데 인간에게는 아주 긴 시간인 50년이 훌쩍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노인이 된 모습이 시청자의 입장에서 꽤 쓸쓸하게 느껴진다. 같은 시간대를 살지만 보내는 시간이 매우 다르다는 점에서 그 극단적인 대비가 피부에 와닿을 정도였다.

장송의 프리렌 키 비주얼-용사 파티
©山田鐘人・アベツカサ/小学館/「葬送のフリーレン」製作委員会

작품의 제목인 '장송의 프리렌'에서 '장송'은 엘프 종족 프리렌이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걸 뜻한다. 오래 생을 유지하는 프리렌이 누구보다 크게 상실감을 겪는다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그동안 다른 작품의 엘프는 그 신비로움과 고귀함을 묘사했다면, 프리렌에서 묘사하는 엘프는 영생으로 짊어진 쓸쓸함을 나타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우리네 인생도 여러 종류의 이별을 겪는다. 그래서 저 긴 삶을 사는 존재에게 측은함과 함께 이입하게 됐다.

떠나간 존재는 결국 떠나지 못한 존재들 속에 기억으로 남아 있는다. 프리렌은 그동안 우선으로 뒀던 것들 대신 기억 속 존재를 떠올리며 인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마치 우리가 기계적 반복의 삶을 살다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를 떠올리듯 말이다. 요즘 자주 보는 쇼츠, 자극적인 뉴스와 현실에서 잠깐 벗어나고 싶다면 이 애니도 추천한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엘프의 여행 마지막 순간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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