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8

개인사

컬쳐

반도체가 트로트를 만든다

2026.10.28 · 개인사

모두가 AI를 주제로 사람들과 대화한 적이 있을 것이다. 주로 인류에 크나큰 위협이 된다거나, 금융 투자 관점에서 거품이 끼었다거나, 아니면 곧 로봇이 보편화될 거라는 이야기들. 직장인들은 조직 단위의 효율화나 자동화처럼 더 세밀한 내용도 주고 받는다. 특히나 고용된 입장에서는 AI가 주는 공포심에 꽤 많은 시간을 잡아 먹힌다. 그럼 반대로, AI가 소위 말해 '대유쾌 마운틴'으로 작용한 예는 없는 걸까?

어느 날 인스타그램 릴스를 넘기다가 익숙한 멜로디를 들었다. 빅뱅의 노래 뱅뱅뱅을 7080 트로트 버전으로 만든 거였다. 처음엔 종편 채널 프로그램에서 트로트 가수가 부른 건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듣다 보니 사람이 부른 게 아니었다. 트로트 특유의 점잖은 바이브가 없는데 노래가 꽤 맛있다. 마치 파스타를 된장으로 비벼 먹었더니 의외로 굉장한 맛이 탄생한 듯한 느낌이다.

유튜브 얼데이드립 채널의 AI 제작 7080 버전 뱅뱅뱅 스크린샷
분명 아는 가사인데? (출처: YouTube '얼데이드립')
유튜브 얼데이드립 채널 페이지
(출처: YouTube '얼데이드립')

유튜브 채널 '얼데이드립'은 국내 유명 대중가요들을 AI를 활용하여 여러 버전으로 재탄생시킨다.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를 '중년시대' 트로트 버전으로 바꾸거나, 동방신기의 주문을 민요 버전으로 만든다. 노래에 구수한 냄새가 나는데 어쩜 이렇게 간이 딱 맞는지, 옛날 감성이 이렇게 좋은 거였나? 정작 70년대에 살지도 않았으면서.

유튜브 얼데이드립 채널의 AI 제작 7080 버전 소원을 말해봐 스크린샷
정말 심상치가 않은 앨범 커버다 (출처: YouTube '얼데이드립')
유튜브 얼데이드립 채널의 AI 제작 민요 버전 주문 뮤직비디오 스크린샷
동방신기의 주문 뮤직비디오 (출처: YouTube '얼데이드립')
유튜브 얼데이드립 채널의 AI 제작 7080 버전 Magnetic 뮤직비디오 스크린샷
가요톱10 무대에 서신 안일릭 선생님 (출처: YouTube '얼데이드립')

패러디 콘셉트가 웃길지언정 결과물의 퀄리티가 우습진 않다. 각 노래들이 사랑받았던 특징들은 잘 남겨서 버무려 놨다. 아일릿과 코르티스 등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는 아이돌의 곡들도 유쾌하게 활용된다. 원곡의 디테일을 살리는 완성도에 소름이 돋을 정도.

유튜브 얼데이드립 채널의 댓글 모음 스크린샷 1
한국 사람들은 참 즐길 줄을 안다 (출처: YouTube '얼데이드립')

댓글들도 이 채널의 흥겨움에 어울리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를테면 한로로 원곡의 '0+0' 7080 버전에는 '원로 가수 한노로 선생님 그곳에선 평안하십시오'와 같은 댓글이 달린다. 버전에 맞게 유머까지 섞이니 모두가 가벼운 마음으로 놀 수 있다. 풍자와 해학의 민족답게 그 시절 역할을 즐기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AI 커버 곡들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해외에도 전파되고 있다. 해외 K-Pop 팬들도 아마 어리둥절해서 물음표를 띄웠을 것이다. 10년 전 빅뱅 노래부터 코르티스 노래까지 7080 버전으로 다시 만들어져 외국인들이 그걸 좋아한다니 웹소설에서나 볼 법한 상상이 현실이 된 셈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문화승리일까?

유튜브 얼데이드립 채널의 댓글 스크린샷 2
인류 난제 해결보다 유희가 먼저다 (출처: YouTube '얼데이드립')

AI가 만든 이미지나 영상도 이렇게 아예 대놓고 가짜를 만들면 오히려 불쾌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덕분에 그동안 관심도 두지 않았던 7080 음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고, 어떤 곡은 원곡보다 좋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친근한 정서가 한 방울 섞였을 때 느끼는 아련함에 마음이 동했다. '얼데이드립'의 AI 활용 커버곡이 또 어떠한 즐거움을 만들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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